하이퍼서사 <경계 밖의 요리사>

첫 번째 파동

mynote03469 2025. 11. 30. 11:39

(← 이전 이야기)

 

시위 시작 11일하고도 13시간째.

시장은 우리의 삶이다!

정부는 부당한 처사를 즉시 중단하라!

 

광장 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구호가 통신실 벽을 타고 들어왔다.

메인 모니터 속 화면은 사람들의 머리, 피켓, 셔터 내려간 점포들로 빽빽했다.

 

[현재 광장 중앙의 비규격적 열원과 고차원 메시지 패턴이 시스템에 긍정적인 충격을 주고 있음…]

 

메모리움의 분석 문장이 화면 한쪽에 걸려 있었다.

루카는 그 문장을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입력이지.”

 

그는 생중계 화면을 살짝 줄이고,

옆에 숨겨 둔 보조 단말을 열었다.

 

어두운 회색 바탕 위로 익숙한 알림이 떠오른다.

 

[SUB-NETWORK 접속자: TAE_MIN]

[상태: 비공식 배포 채널 대기 중]

 

생각보다 빨리 키워드가 올라왔더라.”

스피커 너머로 태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 감도가 이 정도면,

그쪽에서도 노이즈 많겠지.”

루카는 여전히 화면을 본 채 대답했다.

 

공유된 태민의 인터페이스가 통신실 모니터에 겹쳐 떴다.

짧은 영상 조각들이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다.

 

마이크를 쥔 손

셔터를 내리고 어깨를 맞댄 사람들

구호가 한 번에 터지는 순간

 

이건 일상 채널용 버전.”

 

태민이 첫 번째 클립을 눌렀다.

제목은 세종 전통시장 하루 브이로그’,

태그는 시장·골목·요리,

썸네일은 냄비랑 웃는 얼굴 하나.”

 

누가 봐도 시위 현장인데,

겉모양은 그냥 시장 풍경이네.”

루카가 말했다.

 

알고리즘은 겉모양부터 본다니까.”

태민이 웃었다.

 

시장 영상 오래 보는 사람들,

따뜻한 밥 냄새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이걸 먼저 던질 거야.”

 

 

 

엔터 키가 눌렸고, 작은 로그가 떴다.

 

[UPLOAD 완료 – category: 일상/요리]

[추천 슬롯 주입 – 대상군: 시장·요리 장기 시청자]

 

처음 몇 분 동안 댓글은 평범했다.

시장 분위기 너무 좋다

이런 데 가서 밥 먹고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장의 방향이 달라졌다.

근데 뒤에 셔터 다 내려져 있는 거, 원래 저래?

3분쯤에 보이는 현수막 글씨, 재계약 어쩌고 써 있는 것 같은데

시스템이 즉시 반응했다.

 

[MONITOR] 댓글 내 ‘질문/의심’ 비율 상승

 

[지표] 논쟁 지수 ↑ / 평균 체류 시간 ↑

[조치] 관련 콘텐츠 노출 비율 +0.08

 

상단 지도에 찍힌 점들이 꿈틀거렸다.

세종 주변에서만 맺히던 점들이,

조금씩 서울·부산·광주·대구·제주 쪽으로 번져 나간다.

 

각 도시에 달린 문장들은 조금씩 달랐다.

 

우리 동네 시장도 재계약 때문에 시끄러움

프랜차이즈 때문에 쫓겨난다는 말 들었는데, 남 얘기 같지가 않다

해시태그의 흐름도 바뀌었다.

 

#세종시장 #시장재계약 #우리의_자리

 

루카는 그 변화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이건 한 도시 이름만으로는 묶기 어렵겠네.”

광장 구호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말이 닿는 곳의 개수는 이미 다른 숫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 →)

 

 

 

 

 

(스토리텔러: 김태형)

본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김태형에게 있습니다. (ⓒ 김태형, 2025)

'하이퍼서사 <경계 밖의 요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식  (0) 2025.11.30
알고리즘이 따라붙는 밤  (0) 2025.11.30
로그 04: 보류  (0) 2025.11.30
로그 03: 확산  (0) 2025.11.30
로그 02: 보존  (0)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