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은 나이지리아에서 왔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저녁이면 향신료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동네 아이들이 문 앞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도시는 알 수 없는 변화로 뒤집혔다.
행정 중심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새롭게 정비된 규정들과 행정 절차들이 골목과 구도심을 옥죄었다.
원래 작고 허름했지만 사람 냄새가 있던 가게들과 식당들은 그 변화에 유독 취약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식당도 그 흐름 속에 휩쓸려
새 규정, 임대료 상승, 유동인구 감소 등이 겹치며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되었다.
집 안은 이제 전과는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도시의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있었지만, 마리안에게는 그 시간이 이미 멈춘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 멈춘 시간 속에 남지 않았고, 남겨진 것은 그녀의 부재가 만들어낸 공허뿐이었다.
마리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공허 속 흔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그곳을 떠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방황하듯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잠깐 일하고 떠나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짐을 싸야 하는 삶.
정착은 한 번도 허락받지 못한 단어였다.
그러다 우연히 ‘세종’이라는 도시 이름을 들었다.
마리안은 그 도시의 이름을 듣자마자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끌리듯 찾아가게 되었다.
세종전통시장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오래된 공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풍경은 그녀가 떠나온 도시의 기억을 희미하게 닮아 있었다.
처음엔 그저 구경하러 온 손님이었다.
그러다 무거운 박스를 드는 상인을 보고
본능처럼 도와주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도와주는 외국인 아가씨”로 불리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자연스럽게
점포 앞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손길을 돕게 되었고,
한 달 뒤에는
“여기 매일 오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고,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리안은 그동안 스스로도 몰랐던 감정을 깨달았다.
자신이 떠나온 곳에서는 지킬 수 없었던 ‘집의 형태’를
이 작은 시장에서는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낀 그 날,
마리안은 정식으로 자리를 얻어 작은 가게를 차렸다.
세종전통시장은 그녀의 과거를 치유해주는 곳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장소가 되어주었다.
마리안에게는 정착이라 부를 만한 이유가 되었다.
(스토리텔러: 홍예지)

본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홍예지에게 있습니다. (ⓒ 홍예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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