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세종전통시장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어두워졌다.
불을 끄는 손길이 하나둘 이어졌고,
평소라면 가게 앞에서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그냥 문을 닫고 천천히 돌아섰다.
상인회 사무실 안에는
작은 전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그 불빛 아래,
상인들은 무언가를 논의하려 모였지만
대화는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누구도 쉽사리 의견을 꺼낼 수 없는 현장에서 한숨 소리만이 바닥에 내려앉아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일괄 해지라니… 우리를 어디로 보내겠다는 건지…”
누군가 중얼거리자 한탄 섞인 말이 따라 붙었다.
“우리가 대기업이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현실이 가진 무게를 있는 그대로 꺼낸 듯한 말에 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그동안 조용히 있던 상인회 회장이 말했다.
“싸우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사라지지 않게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은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
사무실 안에는 말보다 훨씬 많은 침묵이 차올랐다.
한편 밖에서는
바람이 천막을 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평소엔 시끄럽다고 느껴지던 그 소리가
오늘은 어쩐지 쓸쓸하게 들렸다.
마리안은 가장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모든 말의 끝에 깃든 두려움과 무력함이
몸에 스며들듯 느껴졌다.
그녀는 그 느낌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자신에게만 남아 있는 오래된 기억의 냄새였다.
사람들은 결국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흩어졌다.
각자의 가게로 돌아가
샌드위치처럼 끼워진 걱정과 고요 속에서
철문을 잠갔다.
시장 전체가
마치 한꺼번에 숨을 멈춘 듯했다.
그 어둠 속에서
마리안은 느꼈다.
이 공동체가 지켜온 조용한 질서가
오늘 처음으로
눈에 띄게 흔들렸다는 것을.
그 흔들림은
상인들의 분노와 저항을 깨어내는 첫 진동에 가까웠다.
(스토리텔러: 홍예지)

본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홍예지에게 있습니다. (ⓒ 홍예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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