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서사 <경계 밖의 요리사>

Prequel: 용기

mynote03469 2025. 11. 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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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보니 약속을 잡았는데, 가긴 가야겠지?
불안함 반 설렘 반으로 약속 장소인 폐허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린 짧은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이름은 '은경'. 나이는 나보다 1살 어리고 직업은 현재 미술학원 강사로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어제 학원가에서 만난 건 이런 이유였다.

"저기, 이제 뭐 해요?"

"마리안이 폐허 지역을 다 보셨다고 했는데 여긴 그렇게 며칠 만에 다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음. 사실 첫날에 이미 대충 다 둘러보고 그다음 날부터는 은경 구경만 하다가 돌아갔는데.

"따라오세요. 이 장소의 진면목을 보여드릴게요."

나는 은경을 따라 폐허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살짝 긴가민가한 상태로 따라다녔지만 이내 은경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폐허는 단순히 글자 그대로 오래되고 부서진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은경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폐허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아름다움인 세종시 도심'과 반대로 '감각의 틈'이 있고 '불완전하지만 날 것의 생생한 감각'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폐허를 돌아다니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와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경은 결코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닌지라 우리 사이에 그다지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많은 교감을 나눈 것 같았다. 이러한 경험은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낯설고도 그리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잠시 폐허 산책을 멈추고 커다란 바위틈에 앉아 쉬기로 했다.

"어떠셨어요?"

"최고였어요!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무척 재밌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이는 결코 립서비스 같은 아부가 아니었다.

"좋아해 주시니까, 다행이네요. 여기 지도에 제가 추천하는 장소를 표시해 드릴 테니까 나중에 꼭 가보세요!"

"그 말은…."

'나중에 꼭 가보세요.'라는 말은 은경은 함께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결국 은경 역시 나와 친구가 되기는 싫은 걸까? 착한 사람이라 나를 밀어내지는 못했을 뿐 은경 역시 속으로 나를 꺼리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침울해하는 와중 은경의 시선을 보니 그녀 역시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짧은 교류였지만 내가 아는 은경이라면 그녀는 나를 밀어내지 않을 거라는 용기가 생겼다. 은경 역시 말주변이 부족해 친구가 별로 없고 혼자 있는 걸 선호한다지만 그녀 역시 사람이기에 외로움은 탄다. 그녀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나를 폐허로 초대했다. 그렇다면 그녀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나 역시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은경이 계속 안내해 주면 안 될까요? 아니, 그전에 저랑 친구가 돼주면 안 되나요?"

은경은 내 말에 놀랍다는 듯이 동그란 눈을 크게 번쩍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차마 얼굴을 계속 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작고 보드라운 손이 살짝 내 얼굴을 만져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네, 저도 마리안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요.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요."

나와 은경은 서로 웃으며 다음 폐허 탐사일 일정을 정하기로 했다.

 

 

(처음 이야기 →)

 

 

 

 

 

(스토리텔러: 김남훈)

본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김남훈에게 있습니다. (ⓒ 김남훈,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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